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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유혹술 이론&기술

[유혹자]냉정과 열정사이 코케트2(코케트가 되는 길)

코케트의 자질_

시간이 흐르면서 남성들도 여성의 전문 분야로 여겨졌던 코케트 전술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특히 17, 8세기 남성 유혹자들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그 가운데 페귈랭은 17세기의 유명한 유혹자였다.

그는 상대 여성의 열정을 한껏 고조시켜 놓고서는 갑자기 거리를 두었다. 여성들은 당연히 애가 달았다.

 

오늘날 코케트는 남녀 모두에게 해당된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것을 싫어하는 오늘날의 풍토에서

애를 태우다가 홀연 거리를 두고 차갑게 변하는 코케트의 간접적인 유혹 방법은 가장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1)코케트는 먼저 목표로 정한 상대를 흥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성적인 매력이든, 아니면 지식이나 명예든 어쨌든 상대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2)동시에 코케트는 상대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마리보가 쓴 18세기 프랑스 소설 '마리안의 생애'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도 대표적인 코케트이다.

그녀는 일요일마다 교회에 갈 때면 세련되게 차려입었지만, 머리를 약간 흐트러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예배 도중에 손을 올려 흐트러진 머리를 고치는 척하면서 맨팔을 드러냈다.

18세기 교회에서는 그런 일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모든 남성의 눈이 일시에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옷이 특별히 자극적인 경우에는 더욱더 남성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여주인공처럼 코케트는 상대에게 드러내놓고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다.

알 듯 모를 듯한 모호한 태도나 말을 통해 일면 상대를 자극하면서도 거절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ㄴ코케트1 : 모호함과 신비로움(흥분고조)_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도 실은 코케트였다.

또한 추종자들에게 '세계의 스승'으로 추앙받았던 그는 댄디이기도 했다. 그는 우아하고 말쑥한 옷차림을 좋아했다. 
그뿐만 아니라 독신생활을 했으며, 누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1929년 그는 자신이 신이 아니고 정신적인 스승도 아니며 어떤 추종자도 원치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오히려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수 많은 여성들이 그를 연모했고, 추종자들도 더욱 헌신적이 되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순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보편적인 사랑과 포용을 설파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매력적인 육체의 소유자로 외모에 상당히 많은 신경을 썼으면서도

독신주의와 정신적인 삶을 강조했다. 바로 이런 모순된 분위기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으로 작용했다.

세상에 초연한 듯한 그의 태도에 사람들은 오히려 더욱더 매료되었다.

 

ㄴ코케트2 : 혼란 창출_
코케트는 사람들에게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든다. 누구든지 일단 쾌락을 맛보게 되면 다시 맛보고 싶어한다.

이런 심리를 잘 알고 있는 코케트는 쾌락을 준 다음에 그것을 다시 거두어들인다. 코케트의 힘은 다양한 방법으로

뜨거움과 차가움을 교차시키는 능력에서 나온다. 8세기경 중국의 전형적인 코케트는 양귀비였다.

그녀는 상냥한 태도와 냉정한 태도를 적절히 바꾸어가며 현종을 사로잡았다. 양귀비는 황제 앞에서 온갖 애교를

떨다가도 그가 작은 잘못이라도 저지르면 태도가 돌변해 화를 내며 돌처럼 차갑게 굳어버렸다.

이러한 그녀가 제공해준 쾌락을 맛본 황제는 그녀가 화를 낼 때마다 그녀의 비위를 맞추려고 궁궐을

발칼 뒤집어놓곤했다. 그녀의 눈물도 역시 같은 효과를 자아냈다. 황제는 그녀가 눈물을 흘릴 때마다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리둥절해하며 안절부절못했다. 황제는 계속해서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려다가 자기 자신은 물론

나라까지 망쳤다. 코케트는 때로 화를 내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상대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흔히 부부나 연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랑 싸움도 이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싸운 뒤에 화해를 하고 나면,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예전보다 배가되는 것이 보통이다.

어떤 종류의 슬픔이든, 슬픈 감정은 유혹의 힘을 갖는다.

 

ㄴ코케트3 : 삼각관계 활용_
또 하나, 코케트는 결코 질투심을 갖지 않는다. 질투심은 나르시시즘에 빠진 코케트의 자기 만족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코케트는 오히려 상대의 질투심을 유발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상대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보면, 자기도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는 척하며 욕망의 삼각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코케트는 상대의 행동에 전혀 질투를 느끼지 않는 척한다. 
이러한 코케트의 방법은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물론 사회적인 상황에서도 지대한 유혹의 힘을 발휘한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여성에게 관심을 가졌던 프로이트는 그 자신도 일종의 나르시시스트였다.

그의 초연한 태도에 제자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심지어 그의 제자들은 그의 그러한 태도를 가리켜 '신의 콤플렉스'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프로이트는 마치 메시아처럼, 곧 작은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 초연한 도인처럼 살았다.

그는 제자들과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으며, 신비롭게 보이기 위해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끔 융, 오토 랑크, 루 살로메 등을 조수로 선택해 가까이 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제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의 눈에 들어 선택받은 자가 되려고 미친 듯이 노력했다.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해 조수로 삼는 것을 보게 되면,

나머지 제자들은 질투심에 불타올랐다. 
인간은 대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못한 것처럼 생각되면 불안해하며 그것을 극복하려고 애를 태운다.

코케트는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서로 경쟁하게 만든다.

이처럼 코케트는 제3자를 이용해 목표로 삼은 상대의 질투심을 유발시켜 복종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프로이트는 위대한 코케트였다고 할 수 있다.

 

ㄴ코케트4 : 코케트전술(대중유혹)_
정치지도자들은 대개 코케트의 전술을 사용해 대중을 사로잡는다. 이들은 대중을 잔뜩 흥분시킨 다음,

갑자기 대중과 거리를 유지한다. 정치학자인 로베르토 미헬스는 그런 정치가들을 가리켜 차가운 코케트라고 불렀다.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상대로 '코케트 전술'을 구사했다. 이탈리아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그는 일약

국가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그는 곧 프랑스를 떠나 이집트 원정길에 나섰다. 자기가 없으면 정부가

사분오열될 테고,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자신이 되돌아오기를 애타게 갈망할 것이라는 속셈에서였다.

그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권력을 넓혀가려고 했다. 마오쩌둥도 선동적인 연설로 대중의 감정을 자극한 뒤 며칠 동안

갑자기 사라짐으로써 자신을 일종의 우상으로 만들었다.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자였던 요제프 티토도

이와 동일한 전술로 국민들의 마음을 장악했다. 위에서 언급한 정치인들은 모두 확실한 나르시시스트였다.

국민들이 불안을 느끼는 환난의 시기에는 '코케트 전술'이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

질투와 애정과 격렬한 감정을 자극하는 '코케트 전술'은 특히 그룹을 대상으로 할대 효과적이다. 
그룹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감정적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케트는 초연한 태도로 철저한 자기 만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울다가 웃다가, 차갑다가 따뜻하다가 하는 태도를

적절히 반복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의 마음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